진여眞如, tathata란 사물이 망념 虛妄分別識 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s : 네이버 블로그
이렇게 알아차리는 게 관(觀, 위빠사나)인데 바르게 알아차림이 정관(正觀)입니다. 이 정관 안에는 정념(正念)이 있는데 이 정념은 반드시 바른 앎, 정지(正知)가 같이 동반해야 됩니다. 지금 까지는 진여 자리에 들어가는 세 가지가 중에 첫 번째 정관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불성이란 모든 중생에게는 불(佛)과 같은 본성이 있으며, 부처님 마음과 중생의 마음엔 아무런 차별이 없다. 누구나 그 바탕엔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함과 이러함을 일깨워주는 게 바로 불성이다.
평상심은 하루에도 수없이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 망념을 자각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의미에서의 평상심입니다. 평상심이라는 말은 중국의 유명한 선승, 조사선의 창시자 `마조도일’선사께서 만든 용어입니다. 평상심이라고 해서 일상적인 마음이라고 해석하면 안됩니다.
우주의 참다운 생명인 진여는 그냥 보통 이치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동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진여불성이라고도 한다. 즉, 진여(眞如)란 우주의 생명 그대로의 여실하고 참다운 이치를 말한다. 진리이기 때문에 진여인 것이고, 우주의 진리와 똑 같기 때문에 진여인 것이고, 일체우주의 생명체인 까닭에 부처님의 성품 바로 불성인 것이다. 그래서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영원불변한 불성(佛性)을 말한다.
앞서 불각에는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이 있다고 했습니다. 6추, 거친 것에는 지상(智相)이 있는데, 이 지상은 아뢰야식을 바탕으로 내 생각, 분별심의 뿌리인 제7식 말라식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5개의 거친 것은 전오식, 생기식(生起識), 제6식 의식에 해당합니다. 집취상은 수, 계명자상은 상, 기업상은 행, 업계고상은 색에 해당합니다. 유식에서는 색수상행식이었는데 여기서는 순서가 약간 다릅니다.
그래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같은 소승에서는 삼세실유(三世實有)를 얘기 하고 바깥 대상은 실제 있다고 인정을 합니다. 그래서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얘기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나도 공하지만 대상도 공하다는 아공법공(我空法空)을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일심, 처음부터 한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몸도 마음, 감각도 마음, 의식도 마음, 의식의 현상도 마음인데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하면 아리야라는 마음이 다 나온 거죠.
생명의 실상, 내 생명의 근본, 참 모습인 동시에 우주 모두의 근본 모습이 진여불성이다. 이는 삼라만상의 모습은 천차만별이지만 근본은 단 하나 진여불성(眞如佛性)임을 말하고 있다. 이 ‘참나’사상이 나오게 된 계기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참나’라고 여기어 그러한 육신에 집착해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그러므로 진아 곧 ‘참나’는 그냥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번뇌 망상에 덮여서 더럽혀있으므로 수행을 통해 찾아서 밝게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참나’가 숨어 있는 본성, 곧 불성을 의미한다. 이 문답은‘바른 관(觀)’, 정관(正觀)을 통해서 진여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죠.
그리하여 불성사상은 중국화 된 불교사상의 전형의 하나가 되고, 이는 선적(禪的) 깨달음을 추구 하는 선종(禪宗) 사상으로 굳어졌다. 지난 시간에는 유식삼성(唯識三性)을 들어서 진여(眞如)의 체(體), 바탕, 본질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중에 의타기성이 이해가 안 되시는 분이 계시는 거 같습니다. 의타기성은 타를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품, 모든 것은 상호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좀 달리 쉽게 말한다면 `근심, 걱정, 증오, 욕망 등이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결국 평상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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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몸의 변화라든지 마음의 변화, 생각의 흐름, 감정의 기복, 그런 변화를 알아차리면 고정관념이 깨지는 겁니다. 사물을 고정화 시켜서 보는 마음이 없어지는 거죠. 그렇게 되면 변하는 것에 대해서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진여(眞如, tathata)란 사물이 망념 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 s
불성이라는 용어는 사람(중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가능성, 즉 속성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여, 자성, 평상심(平常心)은 모두 시대에 따라 또는 불교사상의 발전에 따라 용어만 달리 했을 뿐 그 뜻은 결국 진리에 대한 다른 명칭에 불과합니다. 여래장(如來藏)은 번뇌에 에워싸인 상태의 자성청정심이다. 그래서 비일비이(非一非異)의 아리야식을 설하게 된다. 진여를 이렇게 말로 설명하지만 뭐라 일컬을 수 없고, 비록 생각으로 헤아리기는 하지만 생각으로도 미칠 수 없어,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한다. 진여(眞如), 즉 법성(法性)의 실상은 언제나 변함이 없이 진실해 여여(如如―변함없이 같고 같다)하다는 것을 뜻한다.
진여자성은 이 불성의 본질을 나타내며, 이를 깨닫는 것이 중생의 근본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 궁극적인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합니다. 불각은 바로 우리 인식의 세계이며, 그 인식의 미망(迷妄)성 그리고 아집을 기초로 한 인식을 불각이라고 이름한다. 여기에서 인식이라고 하면 각과 불각이지만 존재로서는 아리야식이므로, 그 아리야식의 성격으로서 각과 불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명에 의하여 망념이 일어난 시점이 바로 불각이지만, 그것은 바로 각의 시점이기도 한 것이다.
심진여에서 자성청정심으로 생각을 진전해 가면 이와 같은 이(理)의 인격화, 이(理)가 지(智)로서 활동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마음의 차원이지만 또한 마음의 본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여기서는 번뇌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서 ‘여래의 법신’이라 불리는 것이다. 순수 청정한 입장에서 마음을 보고 설하는 것이다. 불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에 꽉 차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고정된 모습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지돼 있는 것도 아니다. 파도가 물을 떠나서 나타날 수 없듯이 모든 것(일체법계)은 불성의 작용으로 나툰 것이다.
진여자성이란? 의미와 이해
진여 자리에 들어가는데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정관(正觀)에 대한 얘기고, 두 번째는 주객이 없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처(處)가 없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를 들어서 대승수행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뀌거나 없어지지 않는 본래의 성품을 말하므로 진여를 뜻하기 때문에 결국 진리를 의미합니다. 진여자성을 깨닫는 것은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핵심적인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단순히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 깊은 명상과 수행을 통해 자신의 본래 성질을 직접 체험하고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중생은 모든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탈을 이룰 수 있습니다.
- 부처(깨달음)를 다른 데서 찾지 말라 일상의 네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뜻이다.
- 이 ‘참나’사상이 나오게 된 계기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참나’라고 여기어 그러한 육신에 집착해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 오늘은 진여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언어를 통해서 해석을 해보는 이언진여(離言眞如), 말을 떠난 진여에 대한 얘기입니다.
- ‘여래(부처, 깨달은 분)가 될 태아(장藏)’라는 뜻으로 앞의 불성과 용어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뜻입니다.
- 지난 시간에는 유식삼성(唯識三性)을 들어서 진여(眞如)의 체(體), 바탕, 본질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진여자성은 불교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모든 존재의 본질적이고 참된 성품을 의미한다. 이를 깨닫는 것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며, 개인의 영적 성장과 모든 중생의 해탈을 돕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명상과 수행, 경전 공부를 통해 진여자성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여자성은 불교의 심오한 철학적 개념으로, 특히 대승불교에서 강조됩니다. 이는 모든 존재가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불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불교 철학에서는 모든 중생이 본래적으로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 불성을 깨닫는 것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고 봅니다.
진망화합식이라 하더라라도 이원론(二元論)이 아니고 전체가 망식(妄識)이면서 동시에 그 전체가 심성(心性)으로는 청정한 것이다. 이것은 식(識)이므로 주체적이고 자각적으로 인식하는 생활의 주체로서 마음을 보게 된다. 자성청정심이나 여래장은 인격적이기는 하지만 아직 주체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자기의 인식을 문제로 할 때는 심성(心性)보다 번뇌가 표면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아집(我執)과 아견(我見)을 중심으로 한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망념은 자상(自相)이 없다는 뜻으로 주체적인 모양이 없다는 말입니다. 본각(일심)이 물들면 불각이 되지만 본각 자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망념 자체는 주체적인 모양이 없기 때문에 본각과 같은 주체적인 하나의 모양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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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중생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봐서 한도 끝도 없이 유구한 생명체이고, 거기에 들어 있는 공덕으로 봐서는 만공덕의 자리이다. 그런 공덕이 들어 있는 자리, 자비로운 기운, 지혜로운 기운, 모두를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그런 공덕이 들어 있는 자리가 진여불성 자리이다. 진여불성, 이것은 바로 우주의 생명이고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것 속에도 다 들어 있다.
쉽게 말해서, 진여는 모양 없는 궁극적 실재이면서, 일체의 모든 모양으로 현현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진여는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생각을 벗어나 진여가 됨으로써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범부 중생으로서는 진여를 바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알아차림의 특성에는 첫 번째, 알아차림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생각이라든지 감정의 기복은 https://kampo-view.com/ko-kr 육안으로 볼 수 없는데, 알아차림을 하면 그것을 알게 되요. 상대방하고 얘기하면서 내 마음의 기복을 알 수 있고, 생각의 흐름을 자기가 스스로 아는 거예요. 자기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알아차림이 있으면 습관성이 끊어져 버립니다. 알아차림이 익어지면 습관적인 흡연, 음주, 마약까지도 다 끊을 수 있습니다.